국어교육을 홀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길을 걷다 도시의 건물을 쳐다보고 한 번쯤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걷고있는 이 길이 외국의 어느 낯선 거리를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국적불명의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래 전에 ‘mountain’, ‘follow me’라는 글자를 새긴 티를 입고 다녀 웃음거리가 됐던 일이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이 한글이라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이 한글’이라는 것을 귀가 아프게 배웠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을 두고 왜 남의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 필사적(?)일까? 민족문화에 대한 눈곱만큼의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면 남의 나라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 간과 쓸개까지 내 줄 정도로 필사적이다.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욕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차라리 국어 영어를 공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까지 하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이다.
해외 유학과 영어 연수를 위해 한 해 46억 달러(5조 5억 2백웍원)을 지출하고 있는 나라. 걸음마도 하기 전 기저귀를 찬 아이를 영어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이 땅의 어머니들의 교육열(?)이다. 서울의 강남 일부 병원에서는 영어의 R과 L의 발음을 정학하게 하기 위해 혀와 혀 밑바닥을 연결하는 막을 절개하는 수술이 하루 서너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몽고 침략 후 원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몽고어를, 일제 식민지 시대는 일본어를,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주장하는 시대는 미국말을 배워야 출세도 하고 귀족의 반열에 서는가? 자식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기 위해 기러기 아빠는 물론 파출부며 심지어는 매춘을 하다 적발된 부모가 나올 정도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강의를 하러 들어오시는 교수님들마다 흑판에 한자와 영어로 강의하시는 바람에 혼이 났던 일이 있다. 그것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짧은 한자 실력으로 초서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강의를 들으랴, 공책에 복사하랴 정신이 없었다. 대학 강의는 왜 한글로 판서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회의 같은 건 할 여유가 없었다. 신입생의 생각으로는 폼 나는 대학생이 되려면 으레 영어를 많이 써야 하고, 한자나, 그것도 초서로 갈겨쓰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나 기능이 일생을 살면서 큰 도움이 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에 따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더 필요한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분야도 있다. 외국을 빈번히 드나드는 사람이나 학문연구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영어가 더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외국에 나갈 일이 거의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영어가 필수적일 수 없다. 정보화사회에 ‘웬 뚱단지 같은 소린가‘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영어를 모른다고 무시당하거나 별로 불편을 느끼지도 않았다.
한국 외국어 대학교 박성래 교수는 ‘언어의 적자생존 시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영어를 할 줄 알아야 국제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으니, 우리는 영어를 제1외국어로 할 것이 아니라 제2국어로 해야 된다.”고 주장해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마치 ‘온 국민이 영어를 할 줄 알면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인격이 아니라 영어를 잘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출세의 조건이 되는 나라에서 영어는 곧 선(善)이다. 이러한 가치 전도된 사회에서 올바른 언어정책을 주도해야할 교육부조차 교육과정에서 그리고 대학입시에서 영어시험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사대주의 언어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이란 말이 있다‘ 자신이 몸담고 살아 온 문화유산이 소중한 줄 모르고 남의 문화를 흉네를 내는 모습이야말로 문화사대주의의 저급한 열등의식의 발로다. 한 나라의 언어 속에는 그 민족의 정서와 혼이 담겨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말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그 민족의 혼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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