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국가가 필요한 사람, 기업이 필요한 사람, 사회가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지만 정작 내가 행복하게 사는 길, 사람답게 사는 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윤리라는 이데올로기교육이 아니라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철학에세이’(편집부:동녘)를 만나면서 부터다.
'좋은 것과 싫은 것,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의 기준이 ‘감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살아 왔다. 나이가 50이 가까워서야 만난 철학서적은 나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요즈음 대학교 앞 서점에는 도종환씨의 ‘접시꽃 당신’조차 구하기 어렵지만 80년대 대학교 주변의 서점에는 사회과학 서점들로 넘쳐났다. 운이 좋으면 헌책방에는 북한관련 ‘조선 문화사’니 ‘조선 통사’와 같은 책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던 책. 50이 다 돼가던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꿔놓은 철학 에세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철학 에세이에는 ‘철학이란 무엇인가’,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변화는 왜 일어나는가?’, ‘생각이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국민윤리라는 책에서 소피스트가 어떻고 소크라테스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이면 플라톤이며 칸트가 어쩌고 하던 게 철학인 줄 알았다. 윤리교과서에는 ‘서양윤리사상’, ‘동양윤리사상’이라고 해서 불교나 기독교를 소개하고 북한의 김일성가계를 폄하하고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마지막 장에는 남북한의 통일방안을 비교해 암기하도록 하는 게 철학이요, 윤리라고 가르치는 게 학교의 철학교육의 전부다.
철학이 ‘세계에 대한 근본 인식’이라는 것은 철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깨닫고 학교의 윤리교과서에 나오는 종교나 관념철학은 세계는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나 운명론자로 키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철학에세이를 읽으면서 모순에 대하여 변화에 대하여,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하여 알게 된다. 철학이란 철학의 어원이나 관념철학자의 이름을 외는 게 아니다.
철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철학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철학서점이며 헌책방을 뒤지며 책을 구해 광독 하는 늦깎이 철학 도를 만들었다.
노동자의 철학(1, 2 민해철, 거름), 강좌철학(1, 2 윤영만, 세계), 세계관의 역사(高田 求, 두레), 세계철학사(1, 2, 3 편집부, 녹두), 사람됨의 철학(1, 2 채광식, 채희석 풀빛) 모순과 철학의 변증법(편집부 지양사) 철학과 세계관의 역사(편집부, 지양사), 민중 철학(편집부 다리), 노동자의 철학(박장현 노동의 지평),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펴집부 지양사),
실천의 철학(신재용 백산서당), 민족해방철학(김성민 힘) 조선철학사 연구()편집부 광주), 철학문답(김태웅 한마당), 역사철학연습(우기동 미래사), 우리시대의 철학(이정민 대동), 조선 철학사(정성철 좋은 책), 사람이 주인 되는 철학(강청기 참한),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박승구 백산서당), 철학사 비판(편집부 거름)....
시간만 나면 서점으로 혹은 헌책방으로 다니면서 철학관련 서적이 있는 대로 사서, 사기 바쁘게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읽은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대학까지 다니면서 공부한 내용에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철학이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것을 감탄하면서 읽었다.
철학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생산의 문제, 존재와 의식의 문재, 이론과 실천의 문제다. 세계관을 배움으로서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원칙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是非),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보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생존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의 기본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2차적인 가하는 문제다. 관념철학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따로 존재한다고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 보지만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정신보다 먼저 있어서(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 물질이 정신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철학의 둘째문제는 인간이 물질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세계는 인간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어 세계를 있는 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관념론은 그 반대다.
물질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세계는 ‘물질이 변화한다는 것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성립되는 철학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변증법적 유물 철학은 변화와 연관의 법칙, 모든 사물의 현상은 양적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형태로 변화 발전한다는 양질전화의 법칙, 사물현상은 대립되는 (음전기와 양전기, 북극과 남극,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과 같이 모순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새것이 발생하고 낡은 것이 부정되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유물변증법은 범주, 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 내용과 형식, 필연성과 우연성,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한 이해를 함으로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인식론이며 실천의 문제까지 외연을 확대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을 때 철학은 호기심의 대상이 삶의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식만 있고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 것인지를 모르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행복이란? 사람답게 사는 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 학문의 학문이 세계관이요 철학이다. 지식이 많다고 삶의 문제 행복에 대한 문제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칙도 기준도 없이 옳고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삶은 방황이다. 교육부가 교육권을 장악하고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사회에서는 학교는 삶이 아니라 지식만 주입해 서열이나 매겨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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