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에 처음 입학하는 입문기 초등학생들... 또 한 학년씩 올라가는 재학생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기대와 설래 임으로 다가 오곤 합니다. ‘올해는 우리 아이 담임이 어떤 사람이 될까? 남자선생님일까, 아니면 여선생님일까? 자상한 분일까, 아니면 무뚝뚝한 분일까? 이런 기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새 학기에는 새로운 맘으로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 모두의 꿈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부모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우리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 일등짜리 아이...? 순종하는아이...? 똑똑한 아이....?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랄까요?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받아 오면 받아쓰기 점수 100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한번 경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00점만 받아오면.. 일등만하면... 이렇게 경쟁하다보면 멀쩡한 부모들이 자식바보가 되는 건 신간문젭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싫어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란 무엇일까요?
시험을 칠 때마다 100점을 받는 아이.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 100점이라는 수치는 숫자로 표시된 성취수준으로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일등이라는 것도 상대적이어서 전체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점수란 기억력이나 계산능력 혹은 지식, 이해, 태도 등과 같은 학습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는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숫자로 표현되는 평가는 지적인 영역이지 정의적인 영역이나 체력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점수는 지적인 능력과 정의적인 능력과 신체적인 능력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평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점수에 목매는 어머니들... 공부만 잘하면, 100점만 받아 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런 사랑으로 아이들을 잘 못된 길로 이끌지는 말아야합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은 부모들로 하여금 사교육, 즉 선행학습을 시켜 학생들을 지적탐구에 대한 과정이나 호기심을 말살하는 교육위기의 주범이 되게 합니다. 경쟁교육은 정의적인 교육, 정서교육이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빼앗아가는 주범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서 소질이나 특기도 망각하고 국어, 영어, 수학 점수로 서열을 매겨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병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육의 맹점 중 가장 큰 오류는 결과만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과거 학창시절을 한번 떠 올려 보십시오, 2×1=2, 2×2=4, 2×3=6, 2×4=6.... 이렇게 구구단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지 않으세요? 2×1이 왜 2가 되는지, 2×2는 왜 4가 되는지 모르고 달달 외워서 답을 말하면 우수한 학생이 됐던 기억을 말입니다.
수학이란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대표적인 학문입니다. 2라는 건 개념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정이 중요합니다. 개념을 이해하는과정은 어렵지만 개념만 이해하면 그 뒤의 문제는 저절로 줄줄 풀립니다. 어디 수학만 그렇습니까? 사회과목 또한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얘깁니다.
원둘레를 구하는 방법은 ‘지름 X 3.14’라고 외웠지요? 만약 지름이 10cm라면 10X3.14=31.4라는 답이 나오지요. 답은 알지만 왜 그게 답이 됐는지 설명하라면 못하지요. 독일의 발도로프 교육방법이 생각납니다.
입문기 아이들은 야외로 데리고 나가 자기네들끼리 풀어놓는다더군요. 스스로 관찰하고 추론하고 대화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자연친화적인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도록 놓아두는 교육....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 취급하는 교육, 교칙이나 생활지도규정이라는 걸 만들고 교복이니 두발이니... 그런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가 되는.... 그런데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그런 교육을 한다지요?
결과란 과정의 결실입니다. 물론 정답이 좋긴 하지만 과정이 없는 결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의 행복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하는 삶이 어리석듯이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은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답을 가르쳐 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말살하는 무서운 죄는 짓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교육도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수학문제까지 외우는 입시생들을 보면 답만 가르쳐 주는 경쟁교육이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요? 아무리 우수한 교사라도 학생들이 선행학습으로 교사를 외면하면 좋은 교육이란 불가능합니다. 좋은 교육이란 지식만 주입해 일, 이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자라오면서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장단점을 교사와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교사의 할 일이란 지식주입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한 학급 3~40명이 모여있는 학급에서 일일이 학생 개인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발견해 안내하고 이끌어 주기란 교사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혹은 교과담임과 만나 자녀의 희망과 기대 그리고 요구사항을 확실히 전해야 합니다.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부끄럽다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교사란 학부모들이 세금을 내 고용한 일꾼입니다. 빈손으로 당당하게 가 만나 요구하고 상담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학교교육에 함께하시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십시오.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해 학교급식이나 예산 그리고 운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의견을 피력하고 학교를 바꿔나가는데 동참해야합니다. 학교는 이제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지 않으므로 학교는 그 만큼 진보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귀하다면 학교매점에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식품첨가물 투성이나 고카페인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매일같이 먹는 학교급식의 식자재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비만을 불러오는 식자재는 아닌지, 인체에 유해한 수입품이나 GMO식자재는 아닌지 학부모들이 지켜내야 합니다. 내가 낸 소중한 세금이 학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건 이제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건 학부모의 몫입니다.
개인의 삶이란 그 개인의 수준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의 수준도 그 학교의 구성원 즉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주준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좋은 학교는 이제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성적에 매몰돼 우이아이만 일등이기를 바라는 학부모와 자기 제자 출세시켜주는 걸 좋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나 일류학교가 목표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는 어떤 학교가 될 것인지는 뻔합니다. 좋은 학교는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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