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럭셔리와 지속가능성이 양립하는 도시. 동시대 비엔나의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editor 천혜빈
비엔나를 유구한 역사와 전통,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만 기억하기엔 너무나 아쉽다. 이 도시에 대한 비에니즈Viennese들의 자부심은 무엇이 진짜 럭셔리인지,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해 어떤 노 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천착하는 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극소량 생산으로 희소가치를 더한 하이 주얼리와 럭셔리 패션 브랜드, 지속가능한 원료와 지역사회의 노 동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유기농법으로 키운 제철 채소로 만든 건강식과 내추럴 와인을 소개하는 레스토랑, 그리고 환경파괴와 자원 낭비를 지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도 여전히 럭셔리한 건축미를 뽐내는 호텔과 박물관들. 이것이 매년 유수의 기관과 매체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상위를 차지하는 비엔나의 현주소다.
지속가능을 약속하는 하이엔드 호텔
최근 호텔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지속가능성이다. 태양광 설치 등 시스템적인 측면뿐 아니라 일회용 품 제공을 최소화하거나 지역사회의 노동력과 생산품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각도에서 여행객이 자연스럽 게 그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게 유도한다. ‘지속가능한 도시’에 걸맞게 비엔나의 호텔들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다방면에서 이를 실천해왔다.
1872년에 지어진 건축물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5성급 호텔 썽 쑤시Hotel Sans Souci도 그중 하나다. 구시 가 중심에 위치해 박물관지구(Museums Quarier), 시청 등을 지척에 둔 이 럭셔리 호텔은 그린 글로브 Green Globe 인증을 획득한 곳이다. 그린 글로브는 여행 및 관광사업과 그 공급업체의 지속가능성 성과에 대한 평가와 인증을 진행하는 기관으로, 썽 쑤시 는 이미 2017년부터 시작해 5번째 인증을 획득했다. 일회용 사용의 최소화, 현지 생산 재료 사용을 최대화 하고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물품을 지역사회 브랜드와 협업해 제작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가 하면 비엔나의 또 다른 럭셔리 호텔인 소비엔나 So/Vienna의 행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2008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장 누벨Jean Nouvel이 지은 이 5성급 호텔은 최근 비엔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하며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비엔나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로프트, 스위스의 저명한 아티스트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볼 수 있는 로비,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아서 아르베서Arthur Arbesser가 디자인한 유니폼 등 압도적인 건축미 못지않게 여러 가지 이유로 화제가 되고 있다. 소비엔나 역시 에너지 효율과 제로 웨이스트, 현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와 협업에 힘쓴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음료병, 접시나 수저를 제공 하지 않고 타월 재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식이다. 식음료 업장에선 대부분의 식자재로 유기농 제품을 사용 하고, 이를 로컬팜을 통해 조달한다. 또한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역사회나 지속가능성을 위한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도 한다.
럭셔리의 이상향
비엔나의 전통적 공예 신과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의 접점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전통적 방식으로 대를 이어 지속해온 로컬 브랜드들이 유독 그 어떤 도시보다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로브마이어(J.&L. Lobmeyr) 는 크리스털 세공 기술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브랜드 중 하나로, 최고 품질의 크리스털 유리 제품과 샹들리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73년 비엔나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로브마이어는 토마스 에디슨과 협업해 샹들리에 전구를 개발하고, 빈 왕궁을 비롯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에 장식을 설치한 역사적 브랜드다.
하이 주얼리 브랜드 코체르(A.E.Köchert) 역시 비엔나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다. 특히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아내로 아름다운 용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비극적인 삶으로 역사에 남은 엘리자베스 황후가 착용했던 별 모양의 헤어피스로 더욱 유명하다. 코체르가 다른 글로벌 하이 주얼리 브랜드와 다른 점은 바로 대량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도로 연마된 기술을 보유한 소수의 장인이 매년 소량의 제품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주얼리들은 고객에게 희소가치에서 오는 진정한 럭셔리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는 로브마이어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의 고객 또한 또 다른 소비를 하기 보다 한번 구매한 제품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대를 물려 보존한다고 한다. 이는 공예의 가치와 럭셔리, 지속 가능성을 아우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로컬 브랜드의 힘
장인 정신의 현대적 재해석 또한 비엔나를 기반으로 한 로컬 브랜드들의 특징이다. 유럽 대륙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자기 제조소가 비엔나에 있을 만큼 도예 분야의 역사도 뿌리가 깊은데, 최근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끄는 파이네딩게 Feinedinge가 바로 그런 브랜드다. 독일어로 ‘좋은 것들’이란 뜻의 파이네딩게는 비엔나 시내에 쇼룸과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는데, 이곳에선 친환경 에너지로 도자기를 생산한다. 유통되지 못하는 폐자기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고, 소박하고 심플하지만 섬세한 디자인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벌써 4대째, 120년 동안 모자를 만들고 있는 뮬바우어Mühlbauer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브래드 피트와 마돈나, 오노 요코 같은 전설적인 스타들이 사랑하는 모자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패션 디자이너 니고 Nigo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등 전통 방식과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거침없는 행보로 매 시즌 패션 피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뮬바우어 역시 오스트리아 현지는 물론 세계 각지의 천연 재료를 모자 소재로 활용한다.
의식 있는 미식 경험
비엔나는 먹는 행위를 통해서도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팜투테이블을 적용하거나 현 지 생산자를 서포트하는 일, 식재료 낭비와 동물 학대를 지양하는 일 등은 비엔나의 많은 고메 신Gourmet Scene에선 이미 당연시되는 활동들이다.
랍슈텔레 Labstelle는 요리에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의 생산자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비엔나의 파인다이닝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어떤 식재료를 누가 만들어 공급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고기든, 채소든 가능한 한 모든 부위를 활용할 수 있는 조리법을 모색한다. 랍슈텔레는 이러한 노력으로 정부에서 인증하는 오스트리안 에코라벨을 획득했다. 마인클랑 호플라덴Meinklang Hofladen은 이미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오스트리아의 내추럴 와인메이커, 마인클랑에서 운영하는 팜투테이블 레스토랑이다. 호플라덴(직판장)이라는 이름처럼 와이너리뿐 아니라 각종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선보이는 메뉴들은 모두 그 농장의 생산품을 주재료로 요리한 것들이다.
특히 좋은 재료로 만든 이곳의 빵들은 지역 주민은 물론 비엔나에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미쉐린 2스타를 자랑하는 파인다이닝, 슈타이어렉Steirereck 또한 이곳 고메 신의 자랑이다. 에지 있는 건축물과 노련한 서비스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지역 생산물로 조리하는 창의적인 요리들을 맛보며 또 한번 마음을 빼앗긴다. 무엇보다 도시의 자부심을 담은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의 재해석, 그리고 이를 소개하는 스태프들의 세련된 서비스와 환대가 미식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더 갤러리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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