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플래그십 스토어들을 탄생시킨, 백종환 디자이너의 인테리어 이야기

 

'wgnb'의 대표 백종환 공간 디자이너를 만나다

 

전국 13곳의 교보문고, 분주한 강남역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어느새 도산공원의 랜드마크가 돼버린 준지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등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의 작업들은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좋아한다는 어린 왕자 인형과 니치 향수, 여기저기 북마크해둔 책들이 무질서한 듯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은 곳. 백종환의 작업실은 폭우가 내리는 날에도 빛으로 가득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INTERVIEW>

Q: ‘WGNB’이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워낙 유명한 포트폴리오가 많아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혹여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리더인 백종환의 시선으로 소개를 부탁한다.

뭐, 건축 인테리어 회사다.(웃음) 그리고 공간 디자인을 하다 보니 좋은 기 회들이 많이 생겨 브랜드들과 협업해 가구나 컵, 조명 등, 아무튼 공간 안에 들어가는 모든 걸 디자인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외국에선 공간 디자이너가 가구도 많이 디자인하는데 한국은 아직 그런 케이스가 드물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소개하자면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자 동차면 자동차, 패션이면 패션, 공간이면 공간, 아무튼 디자인에 관심이 많 은 공간 디자이너다.

Q: 요즘 건축가로서의 행보가 보이는 작업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도산공원 에 위치한 준지의 플래그십 건축 작업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기회가 많아져 건축 작업을 늘려가고 있다. 공간 디 자인보다 더 규모가 크고 법적 규제까지 받는 부분이니 어려운 점도, 배울 것도 많더라.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고 있다. 아무래도 준지 작업 후 건축 작업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지금은 조병수 건축가의 지평집 두 번째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다.

Q:사무실이 연남동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에 대한 사연을 소개 해달라.

예전 사무실도 이 근처였는데, 집으로 가는 퇴근길이 막히면 돌아가던 길 에 있었던 건물이다. 원래는 건물 한 층을 한 세대가 쓰던 주택을 고쳐 사 용하고 있다. 한 층에는 부모님이, 한 층에는 둘째 아들이 살고 있던, 1980 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벽을 다 없애고 증축했다. 예전에 쓰던 사무실도 주 택이었는데 빛이 거의 들어오질 않아 불편했다. 내가 쓰던 곳도 완전 골방 이어서 다음에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면 꼭 채광에 신경 써서 밝은 빛이 들 어오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비가 오지만 조명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빛이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뒤 마음이 더 편안해진 것 같다. 

 

Q: 사무실에 <어린 왕자> 오브제가 엄청 많은데 이유가 있나?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사고로 잠시 사막에 표류했을 때 쓴 내용인데, 연인인 콘수엘로를 생각하면서 썼기에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들이 다양하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을 4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3시부터 행복해질 거라는 글귀 같은 것들 말이다. 또 읽다 보면 회사 운영 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글귀들도 많다. 금방 자라나기 때문에 그 냥 두면 별을 먹어버릴 수 있으니 바오밥 나무를 매일 치워야 한다든지. 이 렇게 간단한 문장인데도 상황에 따라 진지하게 읽다 보면 공감 가는 내용 들이 많다. 이렇게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게 소문나다 보니 지인들이 해 외에 나갔다가 <어린 왕자> 오브제나 그 나라 언어로 된 버전을 보면 선물 해주기도 해서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Q: 지난 인터뷰를 보니 공간 디자이너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이 일 에 진심이라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방에서 혼자 가구 배치도 이리저리 바꿔보고 하 는 게 낙이었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나?

고등학생 때 처음 내 방이 생겼는데 어린 마음에 그 방을 되게 멋있게 꾸미 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사실 학생이니 침대와 책상밖에 놓을 게 없는데도 엄마가 쓰시던 전축을 내 방으로 가져와 배치한다든지, 소품 가게에서 본 벽장을 사 달라고 조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직까 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가구 배치를 바꿀 때마다 재미있었 다는 것만큼은 기억난다. 아무래도 방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가 구 배치만 바꿔도 기분이 달라진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침대 방향만 바꿔 도 시퀀스 자체가 달라지니 잠자리에 누웠을 때 기분이 달라지고, 책상 배 치에 따라 공부가 잘 되고 안 되고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무튼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항상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게 일상 이었다. 그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웃음)

 

Q: 그렇다면 혼자 쓰고 있는 이 5층 공간은 어떤 식으로 구성했는지 궁금하다.

르 코르 뷔지에, 알바 알토 등 영감을 많이 얻었던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 를 배치했다. 특히 저 알바 알토의 스툴60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따뜻해지 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 일부러 빈티지로 구해 넣은 것이다. 파울로 리자토Paolo Rizzato라는 이탈리아 건축가가 디자인한 벽면의 이 조명 들은 5층 공간을 디자인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미리 주문한 것이다. 그는 ‘인간이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으로 이 조명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Q: 작업실과 집의 분위기는 또 다를 것 같다.

집은 현실이다.(웃음) 평범한 아파트를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잘못 손댔다간 두고두고 욕을 먹을 수 있기 때 문이다.(웃음) 그래도 큰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라 마루에 뽀로로 매트가 깔려 있고 그렇진 않다. 물론 원하는 목표는 있다. 언젠가 나만의 집을 지어 서 꾸미고 사는 것이겠지.

Q: 대학에서 강연을 많이 하는데, 여행을 자주 가라고 조언하는 편이더라.

정작 나는 학생 때 끊임없이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 했다. 3, 4학년 때만 11개 공모전에 응모했으니, 거의 2년 내내 공모전만 준 비한 셈이다. 담당 교수님들이야 언제나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시지만 나는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때는 그런 기회가 공모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막상 사회에 나가 여행 다니기 시작하니 ‘세 상이 이렇게 넓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런 경험은 안 해보면 모르는 거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을 꼭 디자인이나 건축물만 보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세상 어딘가에 떨어뜨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데 두면 좋을 듯하 다. 그래야 더욱 객관적으로 나를 알 수 있게 되고,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럴 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지는 법이다.

 

<MY FAVORITE>

1. 여행 갈 때 하나 둘씩 사 모은 향수들. 비행기 탑승 전 기다리는 시간에 향수 고르는 걸 좋아한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딥티크와 아크로의 향수. 2. 그림 그릴 때 쓰는 아크릴 물감들.

 

 3.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와 닮아서 내 생각이 났다며 누군가 선물해준 화분. 4.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이 내 생일에 메시지를 적어 선물한 것.

 

5.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내게 여기저기서 선물해준 오브제들. 6. 아랍어로 쓰인 것과 일본어판 등 다양한 버전의 <어린 왕자> 소설책들.

 

 7. 안경도 거의 다 선물받은 것이다. 안경점 몇 군데의 공간 디자인을 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들로 때마다 하나씩 선물해줘서 바꿔 끼고 있다. 

 

8. 스케치할 때는 쓰는 노트. 9. 직접 디자인한 유리 제품들. 고블릿 잔, 그리고 저 뒤에 물병은 화병으로도 쓸 수 있다.

 

 

<더 갤러리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