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STEALER
신용산에서 삼각지에 이르는 낡은 골목을 핫한 거리로 바꾼 건 베트남 식당 ‘효뜨’였다. 하노이 골목의 식당 건물을 통째 옮겨놓은 듯해 연일 인증샷이 이어졌다. 소고기 쌀국수 집 ‘남박’으로 연속 흥행에 성공한 남준영 대표는 이후 영화 <중경삼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식당 ‘꺼거’로 다시 한번 성공했다. 이후 그는 와인 바 ‘사랑이 뭐길래’,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 감성이 짙은 타치노미 집 ‘키보’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국의 일부를 옮겨온 듯한 독특한 공간을 선보여온 TTT(Time to Travel) 남준영 대표의 새 사무실을 찾았다.
editor 조진혁(freelancer)
photographer 정진우
INTERVIEW
Q. 효뜨, 남박, 꺼거, 사랑이 뭐길래, 키보까지,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한 식당 들을 기획한 사람의 감각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궁금하다.
옛날 색채 조합이나 간판의 서체를 보면 낯설게 느껴지는데, 나는 그런 낯섦을 좋아 한다. 지금도 서울 중심가를 벗어나면 1980년대 간판을 볼 수 있다. 메뉴 구성도 그 시절 그대로인 곳들이 매력을 유지한 채 남아 있기도 하다. 이렇게 예쁜 곳을 보면 사진으로 기록한다.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들 은 설명할 수 있다. 길을 걷다 마주한 철물점 앞의 핑크색 의자 같은 것들이다. 소소 하지만 내겐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것들을 모아 업장에 표현하고 있다.
Q. 매장마다 정체성이 뚜렷하다. 매장 콘셉트에 맞는 아이템을 선별하는 기준이 까다로울 것 같은데?
첫 번째 식당인 효뜨는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가구와 아이 템을 직접 공수했는데, 저렴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국 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해 디테일에 신경 쓰며 테이블 테두리 마감이나 젓가락의 길 이와 색상까지 꼼꼼하게 골랐다. 모든 아이템은 ‘이국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Q.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어떤 순간을 재현하고자 했나?
‘여행에서 눈부신 순간들을 경험했을 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길거리에서 본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그 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업장은 여행에서 느낀 특별한 순간과 인상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낯선 여행지의 세부적인 것들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지만, 그러한 디테 일들이 모여 이국적인 모습을 이뤘을 때 사람들은 기시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Q. 해외에서 구입한 아이템들이 상당할 텐데, 그중 사업장에 설치한 건 얼마나 되나?
처음 효뜨 오픈을 준비할 땐 베트남 시장에서 가구는 물론 신문이나 포스터, VMD 같은 소품들, 젓가락 통까지 모두 사왔다. 이국적인 물건들이라 전부 사용할 심산이 었지만, 의외로 창고에 쌓인 게 많다. 이국적인 아이템이 지나치게 많으니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홍콩과 프랑스에선 신중하게 구매했고, 업장에선 이국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해 배치에 신경 쓰고 있다. 또 너무 빈티지한 것들은 위생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균형을 맞추고 있다.
Q. TTT의 식당엔 독특한 아이템들이 많은데, 공간에서 디테일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작은 디테일들이 전체 완성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하나부터 열까지 공간의 모든 요소에 신경 썼다. 키보는 일본 서민들이 주로 가는 타치노미에 서 영감을 얻었는데, 실제 경험하고 느낀 포인트들을 공간 곳곳에 반영했다. 특히 주로 과거 일본 문화 요소들을 사용해 클래식한 느낌을 줬다.
Q. 가구와 아이템 배치에 참고하는 레퍼런스가 있다면?
주로 클래식한 영화나 음악, 또 거기 사용된 컬러 조합에서 영감을 얻는다. 특히 과거 유럽 영화를 볼 때 테이블 세팅을 면밀히 살피는 편이다. 어떤 그릇을 사용했고, 어떻게 세팅했는지, 또 색감은 어떤지를 보면서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는다. 한편, 낯선 동네를 방문하기도 한다. 강원도 사람이라 서울에 여전히 낯선 곳들이 많다. 어딘가는 외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외국을 여행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기분도 좋아진다.
Q. 음식점을 전시장처럼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TTT의 사업 장은 남준영 대표의 자아가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창작자로서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창작자인데, 가수나 미술가 같은 예술가들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다. 예술 작품은 영구히 남을 수 있지만, 외식업은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매장은 유행과 소비자의 관심도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또 부동산 문제도 크다. 운이 안 좋으면 5년 만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영업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 요소가 많다 보니 고충을 느끼기도 한다.
Q. TTT 사무실을 개업한 지 3개월이 됐는데, 실제 공사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오래 걸렸다. 공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론 몇 달이 걸렸다. 선반은 무엇으로 할지, 무슨 색을 사용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떤 색의 조합이 어울릴지, 바닥의 우드 톤에 대한 고민도 컸다. 색상 선택이 어려워 길거리의 간판 등 다양한 색 조합을 보고 인상적인 것들은 사진으로 남겼다. 또 낯선 동네를 찾아다니며 레퍼런스를 수집했다. 최근엔 프랑스에서 열흘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사진만 5천 장을 찍었다. 뭔가를 만들 땐 그냥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고단한 선택의 연속이다. 내 의도가 잘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Q.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많다. 라틴 팝과 샹송 앨범 재킷에선 위트도 느껴진다.
프랑스에선 음반 관련 아이템을 굉장히 많이 찾아봤다. 앨범 재킷엔 내가 좋아하는 컬러 조합과 독특한 폰트 등 위트가 담겨 있다. 이렇듯 앨범 재킷과 편집 디자인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또 포스터를 만들 때 레퍼런스로 삼기도 한다.
Q. 칼이 굉장히 많은데, 모으는 이유가 있나?
여름 행사를 마치고 북한남동에 요리사를 위한 편집 숍을 오픈할 계획이다. 다양한 그릇, 서적, 도구, 워크웨어 등을 준비할 예정인데, 이 칼들은 그곳에 전시할 것들이다. 프랑스에 가면 특별하고 다양한 제품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작은 칼은 요리사에게 필수적이고, 구매도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다. 이런 작은 칼들을 진열한 멋진 편집 숍을 상상해봤다. 서핑, 테니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처럼 요리사 들을 위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Q. 요리사들을 위한 공간에서 음식을 판매할 계획도 있나?
음식점보다는 도구 편집 숍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요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공 가능한 서비스를 고민 중이다. 주방 구성이나 요리에 대한 안내 등 우리 기술력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리의 ‘ofr 서점’처럼 요리 서적이 쌓여 있고,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도구와 책을 즐기고, 셰프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Q. 사무실에도 책이 많다. 문학부터 요리 서적, 호텔 서적 등 TTT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호주에 머물 때 어디든 놀이터가 많고 시설이 잘 돼 있어 감명을 많이 받았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공시설이 많지 않다. 외식 공간을 만드는 브랜드를 잘 운영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공공시설을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기 좋은 시설과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외식업으로 시작했지만 요리사를 위한 공간 등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FAVORITE ITEMS
1. 미드 센추리풍의 캐비닛과 페르시안 문양의 카펫, 오리엔탈 무드의 램프, 마네키네코. 배경은 다르지만 한데 모이니 조화롭다.
2. 부처님 그림은 두 번째 브랜드 ‘남방’ 오픈 전 국내에서 구입했다. 업장 벽에 1년 반 동안 붙여놓았다가 훼손될까봐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옮겨놨다.
3. 태국 짜뚜짝 시장에서 구입한 천장 조명. 레드와 핑크 두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압도적 존재감으로 순식간에 방콕 분위기를 연출한다.
4. 사무실의 전선 보호용 CD관은 보통 은색과 검은색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TTT 사무실에는 노란색, 녹색, 빨간색 CD관이 설치돼 있다.
5. 최근 프랑스에서 구입한 주방용 칼들. 작은 칼은 어느 주방에서나 다양하게 사용되기에 요리사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이다. 앞으로 요리사들을 위한 공간에 전시할 예정이다.
6. 태국과 홍콩 등에서 구입한 그릇들로, 이건 극히 일부이다. 요리마다 색과 질감이 달라 직접 그릇에 플레이팅해보며 어떤 게 어울리는지 연구한다.
7. 레시피나 플레이팅에 참고하는 요리 서적과 20대 때부터 모은 문학 서적들이다. 이것 역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8. 젖소 모양 저금통은 프랑스에서 구입한 것이다. 등에 ‘유로Euro’라고 써 있어 유니크하다.
9. 프랑스 문구점에서 구입한 금연 경고장과 근무 일정표. 행정기관에서 사용할 법한 물건들이지만, 이런 작고 일상적인 아이템이 프랑스에 여행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갤러리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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