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체험 야자수 드롭 현장

떨어지는 코코넛을 조심하세요 
 

 
 
 
 한해 휴양지에서 파도에 휩쓸려서 죽는 사람보다 야자수 나무 아래를 걷다가 야자수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일찍이 알게 되서인가, 야자수에 로망 같은 건 없는 사람인데 숙소 앞 베란다에서 수영장 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쯤 야자수에서 큰 덩어리가 아래로 무겁게 추락하는 소리가 들려서 적잖이 놀랐다

 

어디에서 난 소리인가, 야자수 나무 하나하나를 눈으로 열심히 훓고있는데,  두 소년이 야자수 나무를 맨발로 기어오르고 야자수를 만지고 있는 날렵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숙소문을 열고 이미 하루가 끝나 퍼져있는 동행인에게 물었다

[지금 코코넛을 따나봐요, 우리 숙소 옆이 코코넛 농장이었나 봐. 구경 갈래요?]

[... 아... 안 가도 돼요?]

[당연하죠. 전 다녀올게요!]

 

 

 

나는 예의상 물었을 뿐이다

숙소문을 열고 도로가를 따라 빠르게 달려 코코넛을 따고 있는 농장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나나잎이 우거져서 시야를 가렸지만 아래쪽에 멀리 떨어져서 코코넛을 받기 위해 줄을 잡고 있는 모자지간을 발견했다

 


사람키의 몇 배나 되는 야자수에서 떨어진 열매를 맞으면 즉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체험삶의 현장]을 직관했다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과 신발도 신지 않은 맨 발바닥으로 15미터는 돼 보이는 야자수에 10초도 걸리지 않고 성큼성큼 올라서더니 여유 있게 웃어 보이는 이 집의 장남은 하루이틀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야자열매에 긴 끈을 칭칭 감더니 열매가 있는 가지를 잘라서 도르래처럼 걸어놓으면, 아래쪽에 대기한 가족들이 끈을 서서히 잡아당겨서 열매가 깨지지 않게 공중에 있던 코코넛을 내려받는 식이다

 

같은 인간인데 누군가는 몇 초 만에 야자수 꼭대기에 맨발로 올라설 수 있고

나는 모든 암벽등반 장비를 챙겨줘도 힘들 것이다

갑자기 곰이 나타난다면 당연히 내가 잡아먹히는 것이 맞다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는 분명 나보다 젊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만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나보다 젊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과 육체노동이 나이를 분간하기 어렵게 했을 뿐, 대화를 나누어 보면 모두가 나보다 어리다는 점에 적잖이 놀라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까

 

멀찌감치 떨어져서 코코넛수확을 구경하는 나를 발견한 어린 딸은 코코넛을 구매할 의사를 묻는다

 

[I'm just watching]

그녀는 그런 내가 웃기는지 배시시 웃으면서 코코넛 따는 일에 대해 길게 설명해 주지만 미안하게도 그녀의 말에 집중하기에는 부딪히는 바나나잎과 야자수 부러지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반은 흘려들었다

 

 

 

 

급하게 베란다에서 야자수 농장까지 달려온 보람이 있다

끈에 팽팽하게 묶어 야자수를 수확하는 장면을 세 번이나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에 가도 하나에 1달러 정도인 코코넛이 이렇게 온 가족이 동원돼서 수확할 줄은 몰랐다

 

모르면 다 쉽다고, 길에 떨어진 잘 익은 코코넛을 가져다 파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시장으로 판매되는 코코넛의 원가는 1달러보다 더 저렴하겠지

 

 

 

 

나는 코코넛 가족이 안에 들어오라는 활짝 웃는 미소와 환대를

한사코 미안한 표정과 함께 거절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주 잠깐 구경했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시꺼멓게 지고 있어서 사실 적잖이 당황하고 살짝 무서웠다

 

침대에 툭 하고 드러누운 나는 방금 본 코코넛 수확현장 사진을 동행인에게 보여줬지만

피로에 절어있는 동행인은 (사실 피로와 상관없이) 관심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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