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말라이 섬의 캔디걸

파란 해변의 야자수보다 소중한 분위기와 한결같은 취향
 

 

 

 

칸나 숲의 작은 집에서 잠깐 나왔다

오늘 이 시간을 나는 고대했는데, 내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은 파란 바다나 키는 야자수 같은 것들이 아니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로컬피플의 마을이나 관광지에서 조금 멀리 벗어난 곳에서 이방인이 낯선 현지인들의 수줍은 얼굴과 밝은 인사였다

 

10여 년 전쯤에 필리피노 마을을 무턱대고 걸어 다니면서, 초록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있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 근처에 만나는 사람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높이 손을 흔들면서 하이 하이 하고 외쳐대던 순박한 시골사람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예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몇 번이고 동생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예쁜 건 사람인 것 같다고.

 

 

 

 

 

초록색 빼곡한 칸나 사이에 숨어있었던 요정의 은신처 같던 칸나집에서 빠져나오니 더 과하게 아름다운 초록색이 온 세상을 덮었다. 내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동생은 고양이를 향해 시샘하고 맹렬하게 짖어대는 프렌치 불독 브루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고양이를 만져볼 수 있게 한 주인 자매에게 사탕을 건네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 같은 것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에 장남 차남 셋째, 어쩌면 아들 친구들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태운 가장과 옆집아저씨 같은 사람들을 지나치면서도 마냥 반갑고 기회가 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들뜬 동생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뒤에 서서 따라오는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피식 웃는다

 

그러고 보니 동생도, 어느새 관광지에서 벗어나 컨트리사이드로 빠져서 현지 사람들과 만나고 스몰톡을 하기 시작한 지가 꽤 되었구나 싶어서 놀랍다

 

탄탄한 근육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거칠어 보이는 외모의 낯선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내 뒤로 숨던 아이가, 제발 영어는 언니가 다 해주고, 영어로 된 모든 것들은 처리해 달라면서 두 손을 모아서 싹싹 빌던 낯가림 심하고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아이가,

 

나눠줄 사탕을 가득 채운 가방을 대각선으로 둘러메고 내 앞에 서서 처음 보는 길을 겁 없이 들뜬 발걸음으로 무작정 걸어간다

 

이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해하고, 여행지에 가서도 뭘 먹을지 어떤 것을 하고 올지만 가득했던 아이가 지방별로 사람들의 성격이나 말투를 제법 흉내 내는 것을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낯설고 신기했던 동생은, 이제 사람과의 교류에서 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쓰다듬어줄 때마다 행복하고 웃던 아기염소와의 스킨십도 조심스럽고, 낯선 고양이나 강아지에 대한 경계심도 여전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깔깔거리더니 가방에 있는 사탕을 꺼내서 나눠주는 식이다

 

굳이 사탕이 필요한가 싶고, 동생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뭐라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겠거니 어느 것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둔 채로 성장하는 동생 자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같이 여행 오는 만족감은 다 채우는 것 같다

 

 

 

 

말로만 [으악 귀여워, 너 정말 귀엽게 생겼다]고 떠들어대지, 겁 많아서 절대 동물을 선뜻 쓰다듬는 일이 없는 말뿐인 동생을 보면 하찮다

 

그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동물에게 저런 식으로 대하고 반가운 척 하지만 마음속의 두려운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린 동물이라고 모를 리가 없잖아. 

 

뻘쭘하게 올 듯 말 듯 한 동물들은 노선을 바꿔 내쪽을 향하다가도, 잔뜩 경계를 품은 동생을 보고 멈칫거리면서 지나치길 반복하고, 나는 그런 동생의 뒤를 차분히 따라 걷는다

 

 

 

 

 

앞서 걷던 동생은, 만나는 모든 들꽃을 한 송이씩 꺾어서 나에게 건넨다

 

이 꽃은 조그마한데 별을 닮아서 귀엽고, 이 꽃은 색이 화려한데 보고 지나칠 수가 없을 만큼 특이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면서 갖은 이유를 대면서 한송이 한 송이씩 나에게 건네고 다시 앞장서서 신나게 걷는다

 

나는 언제나처럼, 테로잎 하나 커다란 것을 꺾어 들어 양산처럼 쓰고 오늘도 햇빛을 적당히 가린 채로 받은 꽃을 몰래 동생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꽂아 넣고 흐뭇하고 귀여운 마음을 숨긴 채로 세상 평온한 시간을 만끽한다

 

 

 

 

 

해외에서 나보다 앞장서서 걷는 일이 전무하다 싶은 아이가 초행길을 신나서 모든 곳을 기웃거리면서 걷는 시간이 행복하다

 

언제나 팔짱을 꽉 끼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시간과 효율을 따지면서 혹시 모를 경계심을 놓지 않는 사람도, 필리핀 외곽으로 빠지면 어쩔 수 없는 소탈한 사람들과 자연을 마주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게 되는 것 같아, 이곳에 오지 못한 오빠가 생각나서 괜히 미안해졌다

 

그도 컨트리사이드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분위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서, 어쩌면 휴양이라는 게 대단한 리조트에서 꽤 좋은 음식을 먹고 평생 해보지 못할 경험과 체험들만이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은, 내가 십여 년 전에 다녀온 곳보다 삶의 수준이 높은 편인 것 같다

잘 포장된 도로와, 단정한 형태를 갖춘 집에, 프렌치 불독이 공존한다

 

반달리즘 같은 그라피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필리핀 특유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알록달록한 아이들의 작은 옷이 걸린 빨랫줄이 줄지어져 늘어진 작은 초가집들도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로를 향해 난 긴 좁은 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었다

 

그동안 동생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조그마한 가방 지퍼를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고, 그녀가 모든 사탕을 다 털어냈을 때 나는 모양이 예뻐서 나눠줄 맛이 나는 사탕보다 받는 사람이 기억할 정도로 맛있는 사탕을 주는 게, 네가 원하는 추억을 만들기에 더 좋겠다고 공항에서 고를 때부터 못마땅했던 사탕에 대한 품평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됐다

 

귀여운 좋은 마음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겠지

 

역시, 번화가에서 빠져나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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