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한 명이 떠나고 난 뒤
같이 여행하던 중에 일행이 먼저 귀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예정된 일이었고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 먼저 가버리고 나면 마음이 마냥 좋지많은 않은 것이 이런 식으로 일정을 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올라오던 참이었다
좁은 방 하나에서 셋이 왁자지껄하게 매일매일을 보내다가 휑 비어버린 공간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넓고 차가운 리조트에 온기라도 필요한 것 같아서 곳곳의 전등이라는 전등은 모두 다 켰다
오늘 하루종일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으로 얼굴이 좋지 않았던 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괜찮을만한 상황과 장소에서도 감정이 올라오지 않던 이를 어떻게든 잘 배웅해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고 나니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저녁 아홉 시가 될까 말까 한 상태였고, 이곳저곳 다 어둠이 내려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모가 풀어놓은 색색의 실들을 한쪽으로 정리하거나 그다지 어질러지지도 않은 공간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낮에 룸서비스로 시켰다가 도저히 못 먹겠다 싶어서 치우려고 놔둔 피자와 스파게티 두 접시는 손댄 흔적하나 없이 말끔해서 슬그머니 포크를 들었다가 왜 못 먹을 정도였는지를 기억하고 다시 포크를 내려놓았다
좀 더 잘 먹여서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밤, 이모 몰래 준비한 계획대로 신나게 흔들면서 깔깔댔어야 했는데,
여행 직전에 꼬이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어쩌다 보니 첫날에 모든 걸 몰아버렸다
숨을 쉬지 못하고 뒹굴면서 웃었던 것도, 이모가 원했던 요가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따뜻한 햇빛 아래를 누비는 것도 모두 첫날만큼 상황이 받쳐주질 못했다
불편하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잠자다가 오랜만에 넓은 사이즈의 침대에 누웠는데도 마음이 휑하다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보고, 혼자 우두커니 비행기 탑승만을 기다릴 이모가 마음에 걸려서 이럴 거면 같은 날 돌아갈걸 그랬다고 다시는 이렇게 따로따로 움직이지 말자고 몇 번을 생각해 본다
어차피 한 명 보내면서 하루를 다 쏟고, 남아서도 맘 편하지 못한 채로 하루가 날아가버리는데 하루가 의미 없이 느껴져서 테이블의 애먼 홈에만 시선이 꽂혀있다가 이모가 버려두고 간 요가매트가 덩그러니 서있는 것이 보였다
같이 해보기로 했던 아사나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우중충한 마음으로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바쁜 꼭두새벽에,
우린 못했던 아사나를 해보고 동생이 내게 준 원피스를 입고 구경도 하지 못하고 지나갈뻔 했던 이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이동해야 되는 스케줄이 뻔한데, 이곳에서 우울하게 앉아있던 기억만 가지고 짐을 챙기지 말자고 밤에 동생과의 약속을 이행하려고 정말 최대한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어제 봤던 슬픈 바다도 쫒기지만 새로운 아침의 기분으로 다시 맞이하고,
좋다고 생각했지만 머물지 못했던 곳들에서도 최소한이라도 바쁘지만 다른 기억으로 바꾸고 돌아오려고 애썼다
내게 이런 마음맞고 같이 노력할 수 있는 동행인이 있다는게 큰 다행이자 축복인 아침,
오늘도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