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돼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
6·10 민주항쟁 서른세 돌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서울 용산구, 현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문재인대통령이 강조한 ‘생활 속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가치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민주주의의 실현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의 강압에서 민족해방을 찾기 위한 3·1의거가 그렇고 주권자가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4·19혁명이 그렇고 유신에 저항한 6월행쟁이 그렇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피흘려 쟁취한 5·18광주민중항쟁이 그렇고 국정농단에 저항한 촛불혁명이 그렇다. 우리의 선열과 6월 항쟁과 촛불시민들이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민주시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민주시민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태도,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태도와 주인의식, 관용의 정신,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 공동체 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아집, 흑백논리, 표리부동, 왜곡, 은폐...'와 같은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합리적 사고’와 ‘대화와 토론 과정의 중시’, ‘관용정신’, 그리고 ‘다수결에 의한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현실은 어떤가? 문재인대통령이 언급한 ‘생활 속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왔을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는 헌법에 명시한 인권이 존중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가? 가정에서의 민주주의부터 보자. 솔직히 말해 대한민국의 가정에서는 전근대적인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민운동이나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권리확장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feminist)들조차도 가정에 들어오면 딴 사람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민주주의를 실천하자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문화와 주자가례의 제사문화를 고수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에는 생활 속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을까?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알기도 못하는 교칙을 준수하기를 바라는 학교생활이 그렇고 학교장중심의 관료주의 문화가 그렇다. 교육의 3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 기구인 학생회도 학부모회도 교사회도 법정기구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만든 학교운영위원회조차 학생대표가 참여하지 못하는가 하면 공립은 심의기구요, 사립학교는 자문기구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직장에는 생활 속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을까? ‘직원은 공사(公私)를 분별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친절하고 신속ㆍ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직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000의 명예와 위상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모 회사의 복무규정이다. ‘공사(公私)를 분별하고 인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명예와 위상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 때문에 제동이 걸린다. 복무규정과 주당근무시간만 준수한다고 생활 속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으로 어떻게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내용이 없는 형식이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을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개인의 가치관은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인간으로 길러내는 가정교육이 그렇고,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생활 속 민주주의란 먼 남의 나라 얘기다. 지금 각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에서는 민주시민과를 두고 헌법가치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헌법조차 가르치지 않는 시민교육으로 어떻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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