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 시러큐스(Syracuse, NY)
미국과 캐나다는 국경이 맞닿아 육로로 오가기가 쉬운 편인데요. 저희가 사는 캐나다 수도 오타와(Ottawa)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대도시는 뉴욕 주의 시러큐스(Syracuse)예요. 차로 3~4시간 거리에 있어 캐나다 국내 여행이 지루해질 무렵 종종 다녀오는 도시로, 뉴욕 주에서는 뉴욕시티, 버펄로, 로체스터, 용커스에 이어 5번째로 큰 대도시입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시러큐스 도시 내 주요 명소는 다 다닌 것 같아 새로운 곳이 없나 여행안내서를 뒤적거리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립 공원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네요.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Green Lakes State Park)
저희가 다녀온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은 시러큐스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14km 떨어져 있어요. 공원 면적은 총 240만 평으로 우리나라의 남산 공원보다 8배 정도 큽니다. 북미 주립 및 국립 공원마다 입장료가 거의 있는 편인데 이곳은 차 1대에 5달러로 비싸지는 않았어요. 주차장 주변으로 자연 센터(Nature Center), 쉼터, 배구장, 농구장, 야구장, 화장실 등이 있어요.
공원의 특색을 살린 놀이터도 있었어요. 놀이터에 수달 조각상이 있어 인상적이었는데요. 1900년대에 개발을 위한 환경 파괴 및 오염으로 인하여 뉴욕 주의 수달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가 뉴욕 강 수달 프로젝트에 의하여 1995-2000년 사이에 다시 회복되었다고 해요.
트레일 입구에 있는 'Carry in-carry out'라고 적힌 나무 상자가 있는데요. 미국 주립공원에서 시행하는 규정으로 산책 시 상자 안 쓰레기봉투를 가져가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담은 후 집으로 가져가야 해요. 그래서 공원 내에는 일반 및 재활용 쓰레기통이 없었고, 애완용 배설물 수거 봉투 밑에 배설물 수거통만 있었어요.
그린 레이크 주립공원의 절벽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에는 2개의 호수가 있는데요. 하나는 그린 레이크(Green Lake), 다른 하나는 라운드 레이크(Round Lake)가 있는데요. 저희는 라운드 레이크보다 2배 정도 더 큰 그린 레이크를 둘러보는 트레일을 선택했어요. 입구부터 나무향이 온몸으로 느껴져 상쾌했어요.
입구 쪽 트레일이 테이블처럼 평편한 큰 바위로 이뤄져 있었는데 바위 사이로 깊은 틈이 많이 보여 인상적이었는데요. 약 1만 5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차가운 해빙수가 석회암 절벽을 스치면서 화학적 및 물리적 작용으로 인하여 생긴 틈이라고 해요.
10여 분쯤을 걸으니 돌과 나무판자로 만든 피크닉 테이블 하나가 나왔어요. 막 걷기 시작했을 때라서 사진만 찍고 스쳐 지나갔는데 트레킹 2시간 동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유일한 테이블이었어요.^^;;
저 바위더미가 산책로였... 암벽타기 도전 구간처럼 보이는 곳이 종종 있었어요. 한국의 등산로에는 바위로 형성된 곳이 많지만 거의 평야지대에 가까운 캐나다 동부 지역에서 살다가 험난한 등산로를 오랜만에 보니 은근 긴장되더라구요.
트레일이 55m 높이의 절벽 위에 길게 형성돼 있는데 울타리는 입구 쪽에만 조금 있고 안쪽으로는 하나도 없었어요. 끝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폭이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구간을 걸으려니 살짝 긴장됐어요.
20~30분을 걸으니 드디어 호수가 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감질맛 나게 밀당하는 호수 덕분에 더 걸어서라도 시원하게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ㅎㅎ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는데 한쪽은 사유지라 접근이 불가능했어요. 넓은 초원의 풀들이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따라 파도처럼 하늘하늘거리는데 접근 불가 지역이라 그런지 더 멋있어 보였네요.
북미 공원의 공기는 어디나 다 좋지만 이곳은 키가 매우 큰 나무들로 꽉꽉 차 있어서인지 걷는 내내 매우 상쾌했는데요.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은 뉴욕 주에서 가장 오래된 산림 보존 지역으로, 공원 절반이 튤립나무, 사탕단풍나무, 너도밤나무, 참피나무, 편백나무, 솔송나무 등 꽤 오래된 나무의 숲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요.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쪽은 벌써 단풍이 시작되어 곳곳에 사탕단풍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어요.
나무 밑에 바위가 있는 탓인지 나무뿌리가 특이한 모양으로 뿌리내려져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부분 순환호 그린 레이크(Green Lake)
걸은지 1시간 정도 지난 후에서야 그린 호수를 볼 수 있었어요. 바위가 많아서 조심조심 걷다 보니 예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탁 트인 호수를 보니 그간의 보람이 느껴져 뿌듯뿌듯하더라구요.
호수가 반가워 무작정 뛰어들면 큰일인데요. 호숫가의 일정 부분이 퀵 샌드(Quick sand)로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퀵 샌드는 모래 지반의 지지력이 없어 사람이 들어가면 발이 아래로 푹 빠지면서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미 1명의 청년이 퀵 샌드에 빠져서 진흙투성이가 된 채 바위 위에서 멍 때리고 있었고 그걸 보고 나서 안타까워하던 저는 퀵 샌드 중 안전한 곳을 찾았다며 손잡아 주던 남편을 자꾸 의심하다가 발을 헛디어 신발을 흠뻑 젖게 된 웃픈 현실을 겪고 말았네요.--;;
그 와중에 멋진 호수의 감상을 놓칠 수 없어 젖은 신발을 신은 채 둘러봤어요. 당시에도 아름다웠지만 단풍철이 되면 더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거의 모든 호수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깊은 층과 표면 층의 물이 섞이면서 순환이 되는데, 주립 공원에 있는 그린 레이크와 라운드 레이크는 모두 부분 순환호로 약 18m보다 깊은 수역은 표층수와 섞이지 않는다고 해요.
부분 순환호의 특징은 호수 표면층의 물이 거울처럼 맑아 반경 사진을 찍기에 매우 좋다고 하던데 정말로 물이 맑았어요. 반면 깊은 수역의 물에는 산소가 없고 약 150m 깊이의 암반에서 흘러나온 칼슘, 마그네슘, 유황이 풍부하여 멀리서 보면 녹색 또는 푸른빛을 띄는 이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깊은 수역의 오래된 퇴적물은 수천 년의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있어 뉴욕 주의 기후를 연구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해요.
퀵 샌드에 빠졌던 청년은 자포자기하듯이 퀵 샌드 위를 점프해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기 시작하더라구요. 물이 차갑지 않냐고 물으니 견딜만하다며 커다란 호수를 혼자 독차지하며 수영했다는! 그린 레이크의 최대 수심은 59m이고, 평균 수심은 20m 정도로 꽤 깊은데 무지 용감해 보였어요.
그린 레이크 호수는 길이가 1.1km, 너비가 0.24km으로 해안가의 길이가 2.9km 정도인데요. 호숫가를 절반 정도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트레일이 안 보이더라구요. 경황이 없어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바위가 너무 험난해 길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가는 사람과 안내판이 전혀 없어 자칫했다가 조난(?) 상태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데이터로밍으로 구글맵으로 켜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젖은 신발로 바윗길을 오르며 모험할 수 없을 것 같아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어요.
매년 8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다는 주립 공원인데 내가 걷는 길이 맞나 싶을 만큼 산책로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걷는 내내 방향이 헷갈린 데다가 구간 거리의 안내 없이 화살표와 이름만 있는 안내판이 갈림길에만 세워져 있어 불편했어요. 55m 높이 절벽의 낭떠러지 곁 산책로에는 울타리가 전혀 없어 걸으면서 살짝 긴장되기도 했구요. 자연보호도 좋지만 주립 공원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만큼 방문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겠더라구요.
그린 레이크 전망대
호수를 따라 한 바퀴를 돌려는 계획은 무산된 채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와 2시간 30분 만에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주차할 때 봐둔 자연 센터를 구경하러 갔더니 주말에만 문을 열어 저희가 갔던 평일에는 문이 닫혀 있었어요. 할 수 없이 바로 옆에 쉼터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이어졌는데... 세상에나! 호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였다는!ㅎㅎㅎ 등잔 밑이 어둡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어요.
우리나라 4대강의 녹조라떼처럼 호수가 녹색을 띠고 있는 이유는 호숫물에 다량의 광물이 포함돼 있어서인데요. 높은 농도의 유황, 칼슘, 마그네슘이 방해석의 작은 결정체와 만나 초록색을 띠며 호수 아래의 층에 퇴적된다고 해요.
다른 호수에서 볼 수 없었던 퀵 샌드 부분을 줌인해봤어요. 호숫가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암초와 희귀한 수생 이끼 및 해면동물이 살고 있다고 해요. 이외에도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에는 18홀 골프 코스, 야영장, 피크닉 장소, 패들보트 및 요가 클래스, 다양한 하이킹 코스가 있으며 겨울철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탈 수 있는 16km 트레일이 있습니다.
호수 한 번 가볍게 보러 갔건데 계획에 없었던 2시간 30분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캐나다에는 없는 던킨 도넛에 들려 프로즌 아이스커피, 아이스 애플사이다, 레모네이드를 주문해 마셨는데 땀 흘리고 난 이후의 달달한 시원함이 주는 행복을 제대로 누렸던 것 같아요.
캐나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족과 함께 퀵 샌드에 빠져 운동화가 흠뻑 젖었던 순간과 길을 못 찾아 나뭇가지 붙잡아가면서 낑낑대며 절벽을 기어 올라갔던 순간을 떠올리니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구요ㅎㅎㅎ 딸은 오늘의 잊지 못할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글로 남겨야 한다면서 차에 오르자마자 기나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ㅋㅋㅋ 적어도 저희 가족에게는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주립 공원이 된 것 같네요. 미국 뉴욕 주 시러큐스에 있는 그린 레이크 주립 공원의 부분 순환호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느끼셨기를 바라봅니다. 행복한 오늘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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