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영웅 테리 팍스(Terry Fox)의 희망은 아직도 살아있다!

캐나다 역사속에서 살아 숨쉬는 테리 팍스(Terry Fox)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캐나다에 살면서 테리 팍스(Terry Fox)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습니다.

캐나다 국회의사당에서는 매년 여름이 되면, 본관 건물에 빔을 쏘아 3D 영상을 보여주는 라이트 조명쇼 'Mosaika'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캐나다 역사 관련영상에서 한 쪽 다리에 의족을 한 테리 팍스는 늘 등장합니다.

캐나다 국회의사당 정문 바로 길 건너편, 오타와 관광안내센터 앞 광장에는 테리 팍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캐나다 총독관저인 리도홀 본관의 정문 앞에도 테리 팍스를 기념한 분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테리팍스의 이름을 딴 길, 빌딩, 공원, 학교 등이 캐나다 전역 곳곳에 있습니다.

또한 매년 캐나다 전국 학교 및 커뮤니티 등 다양한 단체에서 테리 팍스(Terry Fox)의 이름을 단 희망 마라톤이 35년째 시행되고 있습니다.

 

"과연 테리 팍스(Terry Fox)는 누구일까요?"

 

오늘 저희 가족은 캐나다 역사 박물관(Canadian Museum of History)에 다녀왔습니다. 특별전시관 세 곳 중 한 곳에서 테리 팍스(Terry Fox)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찾아갔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사진속의 인물이 바로, 테리 팍스(Terry Fox) 입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장거리 주자이자 농구선수였던 테리 팍스(Terry Fox)는 그의 나이 18세인 1977년, 암의 일종인 골육종으로 다리를 잃게 되고, 의족을 사용하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의족을 한 몸으로 전과 같이 장거리를 달리기도 하고, 벤쿠버에서 열린 전국 휠체어 농구대회에서는 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1980년 여름, 21살의 테리팍스는 암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캐나다 대륙 횡단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한 계기가 무엇이었냐구요? 테리 팍스가 암병동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중, 그 곳에서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암에 걸린 어린 환자들이 살 수 있도록 암 연구를 돕기 위해 대륙횡단 마라톤을 결심한 것이죠.

 

캐나다의 대륙횡단의 총 길이는 7,821km로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거리인 약 400km의 20배에 달하는 거리로, 서울과 부산을 10번 왕복하는 거리인 셈이죠. 위 사진의 초록색 선이 캐나다 대륙횡단도로입니다.

 

하지만 143일동안 5,373km를 달리는 도중인 1981년에 암이 폐에 퍼지게 되면서 대륙횡단의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테리 팍스는 생을 마치게 됩니다. 사망을 한 그 해에 테리 팍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마라톤이 열렸는데요. 그 마라톤에는 60개국 이상에서 수백만명의 참여자가 모였으며, 당일에 모인 암 연구 기금은 현재를 포함해세계 최대 규모의 당일(one-day) 기금액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과 정신을 이은 '테리 팍스 희망 마라톤'( the Marathon of Hope)은 현재까지 35년째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며, 현재까지 6천억원이 넘는 암 연구 기금이 조성되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딸도 매년 학교에서 테리팍스 희망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테리 팍스에 대해 알아보고, 2시간 내내 학교 전교생이 마라톤에 참여한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사진 위로, 노란 글씨인 'Motivation'이라는 단어가 보이시죠? 'Motivation'(동기부여)의 단어를 본 순간, 캐나다의 역사에 미치는 '테리 팍스(Terry Fox)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위 사진은 전시관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전시물품이었습니다. 테리팍스가 희망 마라톤을 시작한 날, 뉴펀랜드(Newfoundland)에서 대서양(the Atlantic Ocean)의 물을 병에 담았습니다. 이 물병에 담긴 물은 대륙횡단을 마치는 그날, 태평양(the Pacific Ocean)에 부어질 물이었습니다. 그의 뚜렷한 목표정신과

투철한 의지가 느껴지는 상징물같네요.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테리 팍스가 마라톤을 할 시 착용했던 의족입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위 사진 역시, 테리 팍스가 마라톤을 할 시 신었던 신발과 양말입니다. 닳아지고 구멍난 양말과 신발을 보면서, 건강한 몸을 지닌 사람들도 하기 힘든 마라톤을 의족을 하며, 암에 걸린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테리 팍스가 희망 마라톤을 할 당시, 동반자인 Doug와 함께 이용했던 밴(van)입니다.

테리 팍스는 그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I managed 3 miles and then crawled into the van. I cried so hard, I felt so weak." ; 나는 약 5km를 간신히 달린 후, 밴에 기듯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펑펑 울었습니다. 나는 매우 연약함을 느꼈습니다. 

그가 얼마나 신체적인 열악한 조건에서 마라톤을 이행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그가 걸어온 길을 간추려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980년 4월 12일 - 5월 6일(26일, 927km) : 캐나다 동쪽 끝인 Newfoundland에서 마라톤 시작, 테리 팍스가 캐네디언 암 협회를 미약하게 조성하고 달리기를 시작함, 지형과 기후가 험악했음. 

 

1980년 5월 7일 - 6월 27일(52일, 2,050km) : 캐나다 동부와 퀘백지역인 Nova Scotia, P.E.I., New Brunswick, Quebec을 마라톤 함, 이때 까지 모인 성금이 1억여원으로 목표했던 것에 매우 미약하여 실망함, 동반자인 Doug와 갈등이 생겼고,남동생인 Darrell이 합류하여 갈등완화됨.

 

1980년 6월 28일 - 7월 22일(25일, 827km) : 캐나다 온타리오주인 Eastern Ontario, Greater Toronto, Southwestern Ontario을 마라톤 함, 온타리오주에 도착해서야, 사람들의 관심과 갈채를 받기 시작함, 테리 팍스의 마라톤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려, 성금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함.

 

1980년 7월 23일 - 8월 4일(13일, 478km) : 캐나다 온타리오주 북동쪽인 North-Central Ontario을 마라톤 함. 큰 호응가운데서 위기가 옴. 의족을 교체해야할 시점이 왔고, 건강의 적신호가 오기 시작함.

 

1980년 8월 5일 - 9월 1일(28일, 1,091km) : 캐나다 온타리오주 북쪽인 Northern Ontario에서 건강악화로 마라톤 중단하게 됨. 성금 10억 돌파함. 하지만 암이 페에 전이되어 건강이 악화되고, 심한 기침과 가슴통증으로 달릴 수 없게 됨. 

 

1981년 6월 28일 : 테리 팍스 사망, 공영방송에서 장례식을 방영함, 수백개의 지역자치단체서 자체적으로 애도에 참여함, 국회의사당에서 국민장을 거행함.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그는 최연소 캐나다 최고훈장(a Companion of the Order of Canada) 수훈이자, 1980년 국가 최고체육인(Lou Marsh Award:the Nation's top sportsman)이자, 1980년과 1981년 두 해에 걸쳐 캐나다 뉴스 메이커(Canada's Newsmaker)가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적 영웅으로 간주하여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테리 팍스의 이름을 딴 공원, 길, 빌딩 등이 캐나다 곳곳에 있답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테리 팍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이죠.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테리팍스를 기리는 편지들을 활용해 전시를 해둔 공간입니다. 감사함을 담은 손편지들이 테리팍스에게 전해지듯이, 편지들이 바람에 날려 하늘을 향해 날아가도록 전시한 점이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저희 딸도, 전시관을 다 둘러본 후, 테리 팍스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대륙횡단을 했다는 뜻으로 지구를 그리고, $1 동전(특별 발행)의 테리 팍스도 그렸습니다. 테리 팍스의 의족과 그의 상의에 새겨진 이니셜 T도 꼼꼼하게 묘사해 그려넣었네요.

특별전시관을 찾기 전에, 아이가 어느정도 이해할까 싶었는데, 학교에서도 테리 팍스에 대해 듣고, 마라톤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더라구요.

 

캐나다 영웅 테리 팍스 Canada hero Terry Fox

 

물론 캐나다의 역사는 148년으로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에, 우리나라의 긴 역사 가운데 큰 흔적을 남기신 수 많은 위인들과 비교하면, 그 수와 명성에 비해 외소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캐네디언들은 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나 달성했던 결과에 촛점을 두기 보다는, 암으로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테리 팍스가 캐나다 암 연구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바쳤던 그의 강한 희생정신과 암이 퍼져 뛸 수 없는 그 날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투철한 의지를 높이 산 것 같습니다.

 

테리 팍스의 희생정신도 놀라울뿐 아니라, 이민자인 저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35년이 지난 현재까지 테리 팍스를 기리며, 그의 목표와 정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이어 나가는 캐네디언의 실질적이고 전반적인 움직임이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의 수 많은 위인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나라의 근본을 지키며 뿌리를 더욱 깊게 내려 번영케 하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캐나다의 테리 팍스를 통해서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줄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누구나 다 우러러 볼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닌, 다리를 잃어 의족을 했으며, 암이 다 치유되지 않은 21살의 젊은이, 도리어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이 도리어 필요했던 사람이었는데도 말이죠.

 

테리 팍스(Terry Fox)의 전시관에서 아래와 같은 문구를 보았습니다.

테리 팍스는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웅이 무엇인지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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